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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병합 이후 우즈베키스탄 거주 크림 타타르인들의 향방

작성자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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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크라이나사태 이후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고 있는 크림 타타르인들의 귀환문제를 두고 가 관련자들과 행한 인터뷰가 주목을 끈다. 라우프 이브라기모프가 소비에트 가축운송 차량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작열하는 뜨거운 사막으로 던져졌을 때는 15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그는 “인민의 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가족이 크림반도에서 4000km 떨어진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던 70년 전의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브라기모프는 1944년 5월 18일과 20일 사이에 32,000명 병력을 포함하는 번개작전 속에서 자신의 고국으로부터 추방당한 크림주민들 185,111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강제이주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독일 나치에 협력한 혐의자들에 대한 집단적 처벌에 해당했다. 물론 일부의 크림지역 주민들(추정에 따르면 8,684명)이 나치를 위해 싸우기도 했지만, 크림 타타르인, 그리스인, 불가리아인 소수민족들을 포함해 총 238,500명이 추방당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독일군에 대항해 적군에서 싸운 크림 타타르인들이 제대한 후에 즉시 반역자로 몰려 추방당했다는 점이다. 추방자의 대부분(82.5%)은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 당했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는 상태에서 쫓겨났기 때문에 이동 도중에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인해 또는 도착 직후의 가혹한 조건 속에서 사망하는 이들이 많았다. 추방 당시에 6개월의 아기였던 무스타파 제밀레프는 지난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부터 크림을 병합한 이후에 이제는 자신의 고국으로부터 두 번째 추방된 크림타타르의 지도자이다. 크림 타타르인들은 스탈린 강제이주의 첫 번째 또는 최후의 희생자는 아니었으며, 1930-40년대에 강제적으로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뿌리가 뽑힌 민족들에는 소련 서부지역의 폴란드인, 볼가지역의 독일인, 카프카스의 체첸인, 잉구쉬인, 투르크인, 그리고 극동의 한인들이 포함되었다. 강제이주는 충성심이 의심되는 집단을 처벌하려는 이념적 목적도 있었지만, 중앙아시아의 집단농장과 산업화를 위해 필요한 노동력을 강화하려는 실제적인 목적도 있었다. 1953년 스탈린사후에 추방자들에 대한 제한조치는 완화되었으나, 그들의 귀환은 허용되지 않았다. 우즈베키스탄은 크리미아 타타르 운동의 온상이 되었고, 젊은 제밀레프는 타타르인들에게서 반역자의 딱지를 떼고 귀향하도록 크림린에 청원하는 운동의 횃불이었다. 이번 주에 폴란드에서 수여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봉사’ 상을 받은 제밀레프는 자신의 활동 때문에 총 15년 동안을 소비에트 강제수용소와 감옥에서 지내다가 1986년에 풀려났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했던 제밀레프와 수만 명의 크림 타타르인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1995년 즈음, 총 25만 명이 되돌아갔다. 그리하여 우즈베키스탄의 크림 타타르인들은 1989년의 188,772명에서 2000년에는 10,046명으로 줄어들었는데, 단 10년 만에 95%가 감소한 셈이다. 최근 우즈베키스탄의 크림 타타르인들은 자신들의 귀환계획이 러시아의 크림병합에 의해 무산되었다고 본다. 현재 50대인 루스탐 일랴소프는 몇 년 동안 자신의 선친 마을에 집을 짓고 내년에 그곳으로 옮겨갈 계획을 하고 있었지만, 크림이 우크라이나에 반환되지 않는 이상 러시아 군인들이 있는 크림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브라기모프 노인의 경우는 이와 다른데, 그는 앞으로도 계속 타슈켄트에서 살 것이다. 그는 러시아의 크림병합 뉴스에 별로 개의치 않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별 차이가 없다는 입장이다.
 첨부파일
20140611_헤드라인[6].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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