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항공의 편명 MH17은 지대공 미사일에 의해 격추된 것으로 확실시 되고 있다. 키에프는 동부지역의 분리주의 반군과 러시아 측을 비난하는 반면,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 측을 비난하고 있다. 블랙박스가 말레이시아 대표단에 인계되었으며, 국제조사단의 현장 접근이 곧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증거 확인을 통해 사건의 개요가 더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과 정황 증거들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의 추정이 가능하다.
어떤 미사일인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은 피격에 사용된 미사일의 종류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SA-11 Buk 미사일이다. 사정거리는 28km에 달하며 고폭발성 탄두를 장착하고 있는 이 미사일은 이동식 발사대에서 발사된다. 1km 이상 고고도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러시아의 지대공 미사일로는 SA-11 Buk 미사일과 S-300 미사일을 들 수 있다. 그런데 SA-11 Buk 미사일에 초점이 맞춰지는 이유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 군이 모두 이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국영 미디어는 6월 28일, 동부 우크라이나의 분리주의 반군들이 SA-11 Buk 미사일을 획득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보도하였던 바 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분리주의자들이 트위터에 SA-11 Buk 미사일 발사대를 획득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 내용의 포스트는 MH17의 추락 이후 사라져버렸다.
누가 쏘았는가
반군 지도자 이고르 기르킨과 아카 스트렐코프는 자기들이 피격하였다는 사실을 스스로 주장한 것처럼 보인다. 이때만 해도(즉, 피격 직후) 그들은 자기들이 격추시킨 것이 우크라이나 수송기가 아니라 민간여객기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언급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스크바 시간 오후 5시 50분, 기르킨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SNS <브 콘탁테>에 “토레즈 지역에서 우리가 AN-26기를 막 격추하였다”고 올렸다. AN-26기는 안토노프 군용 수송기를 말한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우리가 그들에게 경고했잖아, 우리 하늘 위를 날아다니지 말라고.” 그러나 일단 피격된 비행기의 정체가 밝혀지자마자, <브 콘탁테>의 글은 지워졌고 그 자리에는 기르킨의 말을 직접 인용하였다고 주장한 것은 오류였다는 내용의 글이 대신 들어섰다. 또 키에프는 친러 분리주의 반군과 러시아 장교 사이의 전화 대화를 녹취한 내용을 공개하였는데, 거기에는 체르누히노 마을에 주둔한 코삭 민병대가 격추에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는 그 시초부터 당사자들의 정보왜곡이 하나의 규범처럼 되어 버렸기에 녹취 내용이건, SNS의 메시지이건 어느 하나의 증거가 사건 전모를 보여주거나 결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유사한 정황증거들은 분리주의 반군들이, 항공기 식별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SA-11 Buk 미사일로, 말레이시아 민항기를 우크라이나 군용 수송기로 오인하여 피격하였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