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부터 페르가나 계곡의 주요 종족 그룹들 간에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이것은 수백 명의 사망자와 수천 명의 부상자를 낳았던 2010년 6월 오쉬 지역 키르기스인과 우즈벡인의 충돌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남부 키르기스스탄의 바트켄주에 위치한 우즈벡의 비지 소흐(Soh 혹은 Sokh) 주민들이 키르기스 국경수비대를 공격하고 키르기스인 주민들을 인질로 잡았다. 이 사건은 1월 5일 오후, 키르기스 국경수비대원들이 차르박(Charbak) 마을 인근의 새로 만든 국경초소에 전기선 설치 작업을 감독하고 있을 때, 일어났다. 소흐 비지의 호샤르(Hoshyar) 마을 주민들이 키르기스 국경수비대와 초소를 공격하였으며, 키르기스 국경수비대원들은 이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공포를 쏘았다고 한다.
1월 6일 소흐의 주민들 중 일부가 되돌아와 차르박 마을의 주민 6명을 인질로 소흐 지역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중에 소흐 비지를 운전하여 통과하던 7명의 다른 주민들 역시 소흐 주민들에게 붙잡혔다. 러시아의 인테르팍스통신은 목격자를 인용하여 “사건 초기에 1백명 이상의 우즈벡 주민들이 있었으나 이후 그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보도하였다. 모여 든 우즈벡 주민들은 키르기스 국경수비대원의 무기를 빼앗으려고 했다고 한다. 충돌 와중에 수비대원 몇 몇이 부상을 입었다. 동일한 증인들은 우즈벡 주민들이 국경 초소에 돌을 던지고 창문을 깨뜨렸으며, 키르기스 주민의 차량 12대 이상을 붙잡고 승객들을 인질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소흐 주민들이 불을 질러 키르기스인 소유의 차량 4대 이상이 불에 탔으며, 키르기스 주민들을 실은 버스가 그 시간에 소흐 지역을 통과하다가 습격을 당해 그 승객들 역시 인질로 잡혀 있다고 한다. 인테르팍스 통신은 13명의 인질들이 소흐 비지 호샤르의 병원에 억류되어 있다고 보도하였다.
<베체르늬이 비쉬켁>신문은 1월 6일, 키르기스 국경수비대원과 부상당한 3명 이상의 우즈벡 주민들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다른 익명의 목격자는 키르기스 국경수비대원이 총을 쏘았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다른 보도에 따르면, 사건 발생 후 이 지역의 키르기스인 주민들은 모여서 키르기스 국경수비대원에게 소흐로 들어갈 수 있도록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키르기스 및 우즈벡 관리들 사이에 회담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바트켄 주지사 세이이트미라트 칼리코프(S. Kalykov)가 이 협상에 참여하고 있다. 칼리코프는 1월 6일에 호샤르에 왔으나 키르기스인 인질들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그는 인질들은 무사하며 상황을 종결하기 위한 회담이 진행 중이라고 주민들을 안심시키고 있다.
우즈베키스탄령 소흐 비지는 십년 이상이나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양국간의 관계를 악화시켜 왔다. 소흐 비지가 주민들의 일상에 야기하는 문제들 중의 하나는 소비에트 시기에 건설된 오쉬와 바트켄을 연결하는 간선도로가 소흐 지방을 관통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우즈벡 측이 비지의 통과를 엄격하게 제한해 왔기 때문에 많은 운전자들이 비포장에 표지판도 제대로 없는 도로를 우회로로 이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소흐 비지 전체가 그러하듯 호샤르 주민들은 대부분 타직인들이다. <우즈베키스탄이슬람운동(IMU)>이 1999년 남부 키르기스스탄에 대해 공격을 개시한 이해 우즈벡 당국은 소흐 지역의 군사적 주둔을 강화해 왔다. 주둔 군인들은 대부분 우즈벡인들이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1월 4일 양국 국경에서 키르기스 주민 1명이 우즈벡 국경수비대원에게 사살되었다. 우즈벡 측은 사망자가 밀매업자라고 주장하지만 키르기스 국경수비대원들은 국경 부근에서 우즈벡 수비대가 비무장 키르기스인을 사살한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발표하였다. 우즈벡 국경수비대는 아이다르켄(Aydarken, 우즈벡어로는 하이다르켄)에서 역시 도로를 폐쇄하여, 소흐와 바트켄 주 사이의 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은 당분간 우회로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