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체르노믜르딘 전 러시아 총리(1992-1998 재임)가 향년 72세의 나이로 지난 수요일에 작고하였다. 재임 기간으로 볼 때, 러시아의 두 정권에 걸쳐 살았던 그는 긍정과 부정의 모든 측면에서 새 러시아를 대표하는 남자였으며, 러시아가 시장개혁을 “흡수할 수 있도록” 노력을 경주하였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1992년 12월, 급진계열 주도의 소비에트최고회의를 통해 권력의 자리에 오르게 된 체르노믜르딘은 흰머리에 초라한 양복차림으로 마치 지난 세기의 사람같이 등단하였다. 그러나 서구의 언론은 일제히 체르노믜르딘을 개혁의 바람을 타고 급부상하던 러시아의 상징으로 조명하기 시작하였다. 공개석상에서 그는 아코디언을 연주하면서 와인보다는 보드카를 선호하는 ‘러시아의 진짜 농부’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체르노믜르딘는 고급차에 푹 빠진 세련된 소비주의자였으며, 21세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일말의 동정도 표하지 않았던 인물이기도 하였다. 1990년대 러시아의 유명한 올리가르히(보리스 베레좁스키,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와 같은)들이 부유하고 강력한 힘을 소유하게 된 것은 바로 체르노믜르딘이 집권하던 시절이었다는 평가는 그런 점에서 결코 무관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일각에서는 평화애호가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기도 하는가 하면 실제로도 그와 같은 역할을 잘 보여 주었다. 일례로 1995년 체첸 테러범들에게 잡힌 인질들을 석방시킨 일로 그는 인권운동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총리로서 체르노믜르딘의 재임기간을 러시아 자유 언론의 ‘황금기’로 간주하는 시각이 형성되었던 점 역시 우연은 아니다.